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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



▶ 키워드: 장소성, 본인의 위치, 시선
 
작품이 놓여지는 장소는 그 작품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놓여진다.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그 설명되어지는 장소와 작품을 보게 된다.
그들의 시선은 그 공간과 작품 사이를 오가며 이해한다.
본인은 그들의 시선 사이에 관심을 가진다.
관람하는 이와 작품 사이의 거리, 시선을 보고 관람객들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보는 이의 시선과 작가의 시선 사이에서 느껴지는 공기 또는 거리감을 표현한다.
 
현재 본인의 작품이 과거의 작품에서 달라진 점은 사람들의 시선이 생기고 무대처럼 보이지만
또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이미지 상으로는 무대처럼 보이려고 천장에 무대 조명 장치를 달고 가벽 안에 특정한 장소를 넣는 형식이다.

*시선 – ‘라캉’을 통해서.
 
라캉이 말하는 시선, 응시를 통해 그림 속 사람들,
그들을 보는 ‘나’그리고 이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작품 속엔 장소성이 불분명한 작품도 있고 분명한 작품도 있습니다.
이것을 무대화 시켜서 무대 공간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공간배치를 합니다.
우선 본인 작품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그리고 그들을 보는 그 때 그 시간 속의 본인이 있고
지금 이 그림을 보는 ‘나’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있습니다.
‘메를로-퐁티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우리가 규정해야 할 것은 응시가 시선에 앞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는 한곳만을 바라보지만 나는 모든 방향에서 보여진다.’
이를 라캉이 말하는 시선, 응시를 통해 그림 속 인물들과 본인의 시선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는 ‘사진을 찍는 나는 한곳을 바라보고 찍는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러방향에서 온다
또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 너머에서 여러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는 내가 바라본 시선을 그린 이 작품은 각각 다른 시선에서 보여진다’ 라고 해석을 해보았다.
라캉은 사물과의 관계가 시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재현의 여러 형태들로 배열될 때,
무엇인가가 빠져나가고, 사라지고, 단계별로 전달되며,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응시이다 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의 광경은 마치 모든 것을 보는 존재인 것 같다.
이것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특성을 부여 받은 절대 존재가 있다는 플라톤적 시각에서 발견될 수 있는 환상이다.
그는 말한다. 메를로 -퐁티도 지적했다시피 세계 속에서 우리는 보여지는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의식은 <세계의 광경(speculum mundi)>에 의해서 규정된다.
우리를 규정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우리를 보여지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응시 아래 우리가 놓이게 되면, 우리는 아무런 만족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본인의 작품에서 보면 작품 안에 사람들도 작품안에서의 우리에게 보여지게 되는 존재로 비춰지고
작품밖에서도 그들은 보여지고 있다. 우리, 나 역시 그들에 의해 보여지고 있다 할 수 있다.
본인 작품에서 ‘나’의 위치는 그림 밖이다.
저 장소에서 사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또다시 작품 밖에서 한번 더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보고, 동시에 그들에게 우리는 보여진다. 수많은 시선이 교차된다.
 
사유라는 현상학적 경험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이
자신이 보여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자의 만족과도 같은 것이다.
그림에 연결되는 것은 응시의 점으로서 그림과 마찬가지로 외부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림과 응시의 점을 대응시키는 것, 즉 이 둘 사이에 있는 것을 평면적,
시각적 공간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것이며 가로질러 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불투명하기 때문에 평면적, 시각적 공간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 응시의 관계에서 그림이 응시를 유혹하는 덫의 역할을 하진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화가 역시 배우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란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라캉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보는 사람의 응시와 그림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이러한 관계는 그저 시각적 공간이 아니라 위에서 말했다시피 불투명하다.
거기에서 느껴진 느낌, 감정 그리고 기억들도 이어질 수 있으며 본인은 이러한 느낌들을
다시 바라보는 것을 무대 위,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짜임으로 기억한다.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에 있어서 특정 장면들, 하이라이트 또는 평범해보이지만
감성적인 부분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 나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
그것을 담아내고 그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본인의 그림에서 사람들 또는 한 사람의 시선은 작품 너머에 어딘가를 보거나 작품 안 속의 어떤 곳을 보는 것일 거다.
지만 이 모든 것은 작품 밖의 사람들에 의해 응시되어진다.
작품 속에 사물과 사람들은 작품 밖의 사람들에 의해 바라봐 진다.
그들의 시선을 작품 밖 사람들은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을 보는 것이거나 그들의 시선을 보는 것이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보이도록 그것을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이때 관객과 화가의 관계에서 그림의 기능은 응시와 연관된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는 사람, 즉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고 싶으세요? 자, 이걸 한번 보세요!> 그는 관객의 눈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을 제공하지만,
관객이 마치 무기를 내려놓듯이 응시를 내려놓도록 그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이 바로 그림이 지닌, 달래고 진정시키는 효과이다. 응시가 아니라 시선에,
그 응시를 포기하도록 하는, 즉 내려놓게 하는 무엇인가가 제공된다.
그림은 관객의 응시를 유혹하는 덫이 아니라 그에게 응시를 내려놓게 만든다.





- 약력 -


2019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졸업
2017 동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2012 부산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 졸업

그룹전

2020 4인전, 라이프갤러리

2018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 청구전

2017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GPS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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