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김한별
Kim Han Byul
"우울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움츠러들고 웅크리는 위축된 심리였다. "
작가노트
우울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움츠러들고 웅크리는 위축된 심리였다. 
나는 그런 감정이 자기혐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것이든, 자신을 향한 것이든 혐오는 하나의 나, 하나의 우리라는 환상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뇌는 살아남기 위해 자아를 만든다. 
낱낱이 분열된 채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한 성격과 일정한 서사를 가진 하나의 ‘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에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은 때때로 자신과 타인을 향한 폭력의 씨앗이 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라는 사람이 굉장히 모순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라는 존재가 무수히 많은 층위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완전히 합쳐지지 않는 결들을 품고 있다고 느꼈다. 
뇌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나의 경험들을 잘라내고 이어 붙여 개연성 있는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지만, 
누락된 경험들과 채택되지 않은 서사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여전히 내 몸 속에 존재하며, 불쑥불쑥 모습을 내비치곤 한다. 
결국 완전하게 통합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모순되는 서사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하나이자 하나가 아니다.

인간의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무수히 다양한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몸은 경험들을 통해 만들어진 모순되는 면들이 교차하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일종의 접경이다. 
모순된 것들이 만나고 뒤섞이는, 그러면서도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존재하는 살아 움직이는 경계. 
그래서 몸을 소재로 하여, 하나의 존재 안에 있는 모순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다. 

광학적으로 보이는 몸이 뇌가 만들어낸 편집된 자아 같은 것이라면, 
내가 그리는 몸은 그 매끄러운 피부 안에 다 담기지 않는 파편들을 끄집어내 보여주고자 한다.

드로잉은 과정을, 흔적을, 레이어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드로잉의 방법을 차용했다. 하나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몸이 아닌, 
때로는 끊어지고 때로는 이어지며 자세히 보아야 들여다 보이는 여러 층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몸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고정된 방법을 정해두는 대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어그러짐과 차이를 품고 있는 몸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몸은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내가 본 주관적 실재로서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는 이가 작품을 인간의 ‘몸’이라고 인지함으로써, 인간의 ‘몸’이라는 의미의 집합에 새로운 원소가 하나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몸과 개인의 개념은 조금씩 더 확장되고 다양해질 것이다. 
그렇게 다양성을 하나씩 더함으로써 견고한 선과 분류를 살짝 흐트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그림을 그리는 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약력
2016. SI그림책학교 졸업

단체전

2019. ZECO. (Somebooks 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