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 속에 머무르며 영원히 꿈을 꾸기를 희망합니다."
나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 202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와 거의 일치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멋진 연주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조'처럼, 나 역시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꿈에 대한 열망이 그 누구보다 컸었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이게도 나는 누구보다 진정한 삶을 살고 있지 못했다.
언제나 마음은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바빴고, 나의 생각과 정신은 내가 꿈꾸는 미래의 어느 시점 또는 후회가 남는 과거의 어느 시점을 맴돌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마치 삶을 경주하듯이 살아오다 지쳤을 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곳에 도착하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이라는 것이 선물처럼 주어질까?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을 하는 과정과 매우 닮아있는 듯하다. 다른 여행자들과의 비교를 멈추고,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나의 짐들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하찮게 생각한 것들이 실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것이었고,
내가 좇던 이상이 실은 허상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목적지에 다다르면 그곳에 선물 같은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여행을 고행으로 여기며 소중한 하루하루를 삶에서 지워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혹여 목적지에 다다른다 하여도
그곳에서 우리가 찾던 행복은 찾지 못할 것이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목적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도 않다.
행복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눈이 어두워져 있다면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소풍' 연작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역시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에서 나의 시선만 바꾼다면 지천에 피어있는 초록의 풀잎들에게서, 알록달록 사랑스럽게 여문 열매들에게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그림도구들에게서도 넘치는 사랑과 감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마음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 전달하고 싶어서 스스로 작업을 하면서도 최대한 잡념을 씻어내고, 그 순간이 주는 행복에 머무르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매일의 나의 삶 역시 햇살 아래 만끽하는 소풍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매일이 소풍 같은 삶만큼 아름다운 삶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 현실에 안주하며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는 말인가? 전혀 아니다. 난 여전히 꿈을 꾼다.
하지만 더 이상 불안과 고통이 아닌 평온함 속에 꿈을 꾼다.
그 이야기를 담은 것이 'Made in Color' 연작이다. 하얀 캔버스 위에 지나간 물감들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빛이 없던 곳에 빛을 만들어주고, 꽃이 없던 곳에 꽃을 피운다.
'물감'은 빛도 꽃도 아니지만 캔버스 위에서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되어있는 존재이다.
과거의 나는 내 삶이 하얀 캔버스와 같이 가능성이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미 어두운 색으로 가득해서 난 무엇을 그려나가도 예쁘게 그려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래서 항상 꿈꾸는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고통은 내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었을 뿐, 나의 삶은 여전히 새하얀 캔버스이고, 나는 스스로 물감이 되어 진정 내가 원하는 것들로 삶을 물들여 내 삶에도 빛을 만들고 꽃을 피우려 한다.
작가의 삶은 작가의 작품을 닮아간다고 한다. 이제 곧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꿈꾼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맑은 마음으로 꿈꾸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그리하여 굴곡 있었던 지난 삶까지도 작품 속에서 모두 씻어내고 나날이 나의 삶도, 그림도 더욱 천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