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를 통해 상생과 화의(化儀)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다
[산호의 감각적 연출]
많은 미술 작가들이 생명을 주제로 작업을 했지만 김주령 작가의 생명이 남다른 이유는 작품 소재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바닷속 동물인 산호다. 산호를 기르면서 그 탄생과 소멸이 쉽게 간과할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작품에 차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산호도 탄생과 소멸을 맞지만 소멸이 또 다른 탄생의 시작점이라는 게 가장 흥미로웠다고 했다.
“산호는 수백 개가 동시에 산란을 합니다. 촉수의 폴립이 열리면서 다양한 색상의 난자와 정자가 바닷속에 배출되는데,
이때 난자는 움직일 수 있는 유충이 되어 산호초로 몸을 숨기고 빠른 속도로 분열해 수정을 합니다.
바로 산호가 죽은 곳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죽은 자리에서 나고 난 자리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호가 탄생과 소멸이라는 순환과정을 통해 생명성을 유지한다고는 하나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영원히 소멸을 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윤회 사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특히 군체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탄생과 소멸을 한눈에 목도시킬 수 있다는 것도 미학적 발판이 된 부분이었다.
“산호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백색으로 변화하면서 서서히 소멸합니다.
그래서 하얀 돌기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노란 돌기를 곳곳에 채워서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했습니다.
생성은 곧 소멸을 의미하고 소멸은 생성을 잉태한다는 걸 관람객들에게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김주령 작가는 우연히 키우게 된 산호라는 소재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그 본질로 들어갔다.
그리고 본질이 파생하는 의미까지 집요하게 파헤쳐서 의미 있는 도출을 끌어냈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전환시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설득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누가 보아도 김주령의 작품이라 할 만큼 독창적이다.
“저는 바다생물을 키우는 ‘물 생활’을 시작으로 산호에게 감성 치유를 느꼈고, 작품까지 재현해 냈습니다.
이 재현은 형태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닌 유기체적 생명성을 끌어낸 것이었습니다.
점차 산호가 저이자, 인간이자, 새로운 생명체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인간과 새로운 생명의 실존’이라는 사유로 그 의미를 확장하게 됐습니다.”
[인간과 새로운 생명의 실존]
김주령 작가가 말하는 인간과 새로운 생명의 실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표현한 원에서 비롯된다. 원은 산호의 돌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산호의 산란이 시작되는 세포의 형태이기도 하고,
물고기의 산란이 시작되는 알의 형태이기도 하다. 또 도시계획의 기본이 되는 것도 원이고 고대 천문학자가 생각했던 우주 개념도 원이다.
태양과 달도 마찬가지다.
“원은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궁극적인 완전을 표상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호의 돌기는 자연이 아닌 인간으로 해석되며 그 군집은 많은 인간들이 모여 있는 인간 숲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 <생명의 조화>는 탄생과 성장에 이어 모든 생명체가 조화를 이룬 절정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호를 화두에 올림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불교의 화의사상(化儀思想)을 실천하고 있었다.
화의란 부처 마음 안에 도를 깨닫는 것으로써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욕망으로 생긴 갈등을 교화하는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작품이 <생명의 재발견>이다.
“<생명의 재발견>에 나타난 부처는 해탈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부처와 같이 해탈을 이루면 생명의 탄생과 소멸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의도로 표현했습니다.
해탈이라고 하면 개인의 개성을 앞세우기 보다는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화의를 이뤄 작품 <생명의 조화>처럼 생명의 노란 색이 땅과 하늘을 뒤덮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