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강물결
Ghang Mul Gyul
"부디 내 그림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종이상자를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작가노트
* 작가노트 1 (Cat looking for the box) *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내 삶에 반려동물이 없던 순간은 없었다. 사실 ‘반려동물’이라는 표현도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가족 구성원을 간단히 설명하기 위한 ‘생물학적 특징’을 묘사하는 단어일 뿐, 나에게는 그저 네 발로 걷는 언니, 동생일 뿐이다.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다 보니 형제 자매간의 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너그러운 내가 그들의 개별적인 성격은 물론 생물학적 성향까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졌는데, 그 안에서 나와 그들의 수많은 같고 다름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는 곧 우리 가족의 문제였고, 나아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장벽을 뛰어넘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왔다. 글을 배우기 훨씬 전부터 내 생각을 표현해내는 수단이었던 그림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것이 내 작업의 큰 틀이다.
 
항상 개 언니, 개 동생만 있었는데 7년 전 처음으로 고양이 동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만 년 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진 개에게, 역시 20년 이상 길들여진 나로서는 고양이라는 동물이 네 발로 걷는다는 것 외에는 낯선 것투성이였는데, 특히 작든 크든 종이상자만 보면 어떻게든 몸을 구겨 넣으려 애쓰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상자에 어떻게든 발 하나라도 더 넣어보려 애쓰는 고양이 모습에서 어리석음과 동시에 끝없는 투지를 보았고, 마침내 완벽하게 성공해내는 모습에서는 환상미와 경이로움을, 성공은 했으나 다소 애매한 모습으로 상자와 합체되어 있는 모습에서는 해학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고양이가 결코 내 눈치를 살피고 내가 원하는 결과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자는 고양이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그것을 탐구하는 모든 순간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으로, 상자를 가진 고양이에게는 보통의 고양이나 개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내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자를 머리에 뒤집어 쓴 고양이들’은 이러한 점을 나타낸다). 내 스스로의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과 남의 시선을 중시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2016년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적었던 작가노트 중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 [부디 내 그림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종이상자를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내 작업은 더 많은 상자와 다양한 상자 이용 방법을 제시하면서 아직도 나만의 상자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방향으로 한동안 이어질 계획이다.

* 작가노트 2 (And) *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내가 그린) 수많은 고양이와 상자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 ‘개’ 동생 강실이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사실 작업실이 집과 붙어있는 형태라 하루에도 몇 번씩 강실이가 찾아와서 놀다 가곤 하는데, 매번 내가 어디 먼 곳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것처럼 반겨주는 강실이를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렇게 한바탕 환영식이 지나가고 내 곁에 찰싹 붙어 누워있는 강실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강실이한테는 내가 ‘상자’와 같은 존재인 걸까?”
 
 사방이 고양이 그림과 박스로 가득한 작업실에 여느 때처럼 놀러 온 강실이와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고양이와 상자’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데 거의 모든 고양이가 절대적인 확률로 좋아하는 것이 상자라면, 개들에게는 그러한 대상이 무엇일까?
 공? 간식? 산책? 어떤 것을 대입해도 영 석연치가 않다. 우리 개, 남의 개, 심지어 모르는 개까지 총동원하여 떠올려 봤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따르는 무언가는 없어 보였다. 결국 최근에 와서야 반려동물로 각광받기 시작한 고양이와 달리,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인간에게 필요에 의해 길들여지고 개량되어져 온 개에게는 종의 특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개가 잃어버린 것은>, 2016년 作). 그렇게 개는 본능을 잃어버리고 대신 인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문’이라고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진 대상과 마주하게 된다.
 문이란 대개 얇은 판자에 경첩이 결합된 단순한 장치로, 열고 닫는 행위로 안과 밖을 이어주는 동시에 안과 밖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에게 문은 그저 열고 지나가야 할 시설물에 지나지 않지만, 때로는 답답한 현 상황에서의 돌파구나 새로운 기회로도 상징된다. 그러나 개에게는 반려인을 앗아가 버리는 잔인하고도 최악인 구조물이자 세상 전부와도 같은 반려인을 다시 개에게 돌려주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인간은 너무 바쁘고 생각이 많으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하루에도 수없이 문을 여닫으며 들어갔다 나오고 개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지만, 그동안 개에게 펼쳐질 지옥과 천국의 순간에 대해, 찰나의 기쁨만을 꿈꾸며 삶의 대부분을 문 앞에서의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당장 사람들이 하는 일과 약속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집에서 개만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인간이 없으면 스스로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그 존재들에 대해, 우리가 세상 전부인 그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작업실과 집 사이에 문을 약간 열어둔 채 작업실로 간다. 강실이가 언제든지 스스로 문을 밀고 들어와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약력
2013 한성대학교 회화과 졸업 (서양화 전공)

개인전

2019 개인전 <Cat looking for the box, And>_갤러리 마롱
2019 초대 개인전 <Cat looking for the Box>_살롱리아
2018 개인전 <Box with the Cat>_갤러리 라메르
2016 개인전 <Cat’s with the box>_갤러리 이즈
       
그룹전

2019 단체전 <I ENVY YOU : 넌 좋겠다, 살쪄도 귀여워서>_아티온
2019 단체전 <또 하나의 가족 : PET>_에코락 갤러리
2018 단체전 <고양이>_아미 미술관
2018 단체전 <또 하나의 가족 : PET>_에코락 갤러리
2017 단체전 <또 하나의 가족 : PET ART>_에코락 갤러리
2017 단체전 <생애 ‘첫’소장 경험전>_에코락 갤러리
2017 <서리풀 ART for ART 대상전>_한전아트센터 갤러리 (입선)
2016 단체전 <제 8회 고양이의 날 기획전 : 고양이의 친구들>_갤러리카페 이화중심
2013 단체전 <Thinking out of sight 시선을 넘어선 생각>_한원미술관

아트페어
 
2018 <S-ART SHOW>_S갤러리
2018 <2018 아시아프 &히든아티스트 페스티벌>_DDP 배움터 디자인둘레길
2016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_여수엑스포 컨벤션센터, GS칼텍스 예울마루
2016 <Creative Orange Art Festa>_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컨벤션센터

작가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