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대자연에 기대어 수렵생활이나, 농경생활로 삶을 영유할때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활터전인 도시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더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부유층과 빈민층간의 빈부격차에서 오는 갈등, 채워지지 않는 부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과 공허함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은 불안을 지속 시키며 살아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불안정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라는 공동체 무리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반면 그 공동체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인적인 영역을 추구하기를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사회 속 지위나 재력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각 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개인적인 공간 또한 소중히 보호받기를 원한다.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하기를 꿈꾸는 현대인의 열망과 불안 등을
그 안의 풍경과 그때의 향기,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그림으로 조명해 보고 싶었다.
<필름 속 단상_ 아무도 모른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관람 후 다시 영화를 되짚어 보면서 그 속에 내포된 사회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바라본
작가적 시점과 필름 속 단상 등을 통해 영화를 재구성해본 작업이다.
“아무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아이들의 생활환경들 중에서 가장 부족했다고 느껴지는 것,
혹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아이들을 무책임하게 방치한 엄마나 보호자격인 어른의 부재가 아니라
아이들 중 맏이인 아키라가 아직 제대로 사회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미성년자였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미성년자다 보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었고,일정한 수입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키라 입장에서는 제대로 동생들을 부양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게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이들은 막내를 캐리어에 담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게 되는 슬픈 사건에까지 직면하게 된 것이다.
만약 아키라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성인이었다면 그렇게 막내를 떠나보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동생들 또한 무난히 부양했을 것이라고 사유된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다함께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도심 속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치 어른들의 도움이 없어도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세상의 어른들을 향해
“사회 속에서 당신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당신들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다가온다.
어떠한 열악한 환경이나 사항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그 속에서 놀이를 만들어 내는 존재들이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며 우리는 도시 사회생활 속 타인에게는 무관심한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삭막해져만 가는 현대 도시생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구축하며 살아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과
그 이면에 있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들의 열악한 현실 등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하였다.